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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타르 옛 다리: 시간을 잇는 아치, 화합과 희망의 상징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유구한 역사 도시 모스타르에 자리한 '스타리 모스트(Stari Most)', 즉 옛 다리는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깊은 시대적 의미와 문화적 가치를 품고 있습니다.
에메랄드빛 네레트바 강 위에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솟아오른 이 단일 아치형 다리는 수세기 동안 동양과 서양의 문명을 잇고, 다양한 종교와 민족이 공존하는 다문화의 가교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모스타르 옛 다리가 겪어온 파란만장한 역사 속에서 어떻게 파괴와 재건을 넘어 인류의 화합과 희망을 상징하는 기념비로 거듭났는지 심도 깊게 탐구합니다.
오스만 건축의 정수, 천상의 다리 건설
모스타르 옛 다리는 16세기 오스만 제국 시대의 건축 기술과 예술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걸작입니다.
1557년 술레이만 대제의 명령으로, 당대 최고의 건축가 미마르 시난의 뛰어난 제자였던 미마르 하이루딘이 설계를 맡아 9년간의 고난도 공사 끝에 1566년 마침내 완공되었습니다.
길이 30미터, 폭 4미터에 달하며 수면으로부터 최고 24미터 높이까지 솟아오른 단일 아치형 다리는, 교각 없이 거대한 아치 하나로 강을 건너는 대담하고 혁신적인 구조를 자랑했습니다.
특히 다리 건설에 사용된 현지 테넬리야 석회암은 햇빛의 각도에 따라 미묘하게 색이 변하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다리의 양쪽 끝에는 17세기에 세워진 견고한 할레비야 탑과 타라 탑이 다리를 수호하듯 서 있으며, 이 탑들은 '다리 지킴이'를 의미하는 '모스타리(Mostari)'에서 도시 이름인 모스타르가 유래했을 정도로 다리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17세기 오스만 탐험가 에블리야 첼레비는 이 다리를 "하늘 높이 솟아오른 무지개 아치와 같으며, 암벽에서 암벽으로 이어진 다리 중 이토록 높은 다리는 본 적이 없다"고 극찬하며 그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묘사했습니다.
이처럼 스타리 모스트는 단순한 교량 기능을 넘어, 오스만 제국의 번영과 건축 기술의 정점을 상징하는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평화로운 공존과 문화 교류의 상징
스타리 모스트는 단순히 두 강변을 잇는 물리적 구조물 이상의 의미를 가졌습니다.
이 다리는 모스타르의 독특한 다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네레트바 강은 도시를 동서로 나누었고, 서쪽에는 주로 가톨릭을 믿는 크로아티아계 주민들이, 동쪽에는 이슬람을 신봉하는 보스니아계 주민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스타리 모스트는 이 두 공동체를 수백 년 동안 이어주며 평화로운 교류와 공존을 가능하게 한 '우정의 다리'였습니다.
또한 세르비아 정교를 믿는 주민들까지 포용하며, 다양한 종교와 민족이 함께 살아가는 모스타르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다문화주의는 건축, 예술, 생활 방식 전반에 걸쳐 도시의 풍부한 문화적 지형을 만들었으며, 스타리 모스트 자체도 발칸반도 이슬람 건축 양식의 가장 뛰어난 예시 중 하나로 꼽혔습니다.
다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지역 사회의 관용, 인내, 그리고 연대의 정신을 대변하는 강력한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고, 이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복잡한 역사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였습니다.
수많은 여행자와 예술가들은 이 다리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담긴 깊은 상징성에 매료되어 모스타르를 찾았습니다.
전쟁의 상흔, 다리의 비극적인 파괴
수백 년간 모스타르의 영혼이자 평화의 상징이었던 스타리 모스트는 1990년대 발칸반도를 휩쓴 보스니아 전쟁의 참혹함을 고스란히 겪어야 했습니다.
1993년 11월 9일, 크로아티아계 무장 조직인 크로아티아 방위 평의회(HVO) 포병대의 무자비한 집중 포격으로 인해, 427년 동안 굳건히 서 있던 이 아름다운 다리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에메랄드빛 네레트바 강물 속으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 충격적인 장면은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으며, 단순한 건축물의 파괴를 넘어 모스타르의 다문화적 공존과 화합의 정신이 송두리째 무너졌음을 상징하는 비극으로 기억됩니다.
많은 이들은 이를 '기억 살해(memoricide)' 행위로 규정하며, 공유된 문화유산이 의도적으로 파괴되는 전쟁의 야만성에 경악했습니다.
다리가 사라진 후 모스타르는 물리적으로 단절되었을 뿐만 아니라, 민족과 종교 간의 깊은 분열과 절망감에 휩싸였습니다.
다리 없이는 도시의 기능은 물론, 시민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연대감마저 와해되는 듯했습니다.
이는 전쟁이 남긴 가장 가슴 아픈 상처 중 하나로, 한때 '친구의 다리'였던 스타리 모스트는 파괴됨으로써 오히려 전쟁의 무의미함과 문화유산 파괴의 잔혹성을 강력하게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국제사회의 연대로 피어난 재건의 희망
스타리 모스트의 비극적인 파괴는 전 세계적인 탄식과 함께 즉각적인 재건 움직임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유네스코와 세계은행은 다리와 모스타르 구시가지 재건을 위한 국제 감독 위원회를 신속히 결성했습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정부는 물론, 크로아티아, 튀르키예, 이탈리아, 네덜란드 정부, 그리고 유럽 평의회 산하 유럽 개발 은행 등 다수의 국가와 국제기구가 재건 프로젝트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며 인류 연대의 정신을 보여주었습니다.
재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된 원칙은 '진정성'이었습니다.
1998년 10월 유네스코가 조직한 국제 전문가 감독 위원회는 원래 다리와 최대한 동일한 모습으로, 심지어 16세기 오스만 제국 시대의 전통 건축 방식과 동일한 재료를 사용하여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를 위해 네레트바 강 바닥에 가라앉은 원래의 돌들을 인양하고, 과거의 채석장에서 테넬리야 석회암을 공수하여 숙련된 장인들이 수작업으로 돌을 다듬어 쌓아 올렸습니다.
2001년 6월 7일부터 본격적인 재건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약 1,550만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었습니다.
마침내 2004년 7월 23일, 수많은 국제 인사와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새로운 스타리 모스트는 장엄하게 재개통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건축물 복원을 넘어, 전쟁으로 찢긴 공동체가 화합하고 평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강력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천명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과 살아있는 다이빙 문화
재건된 모스타르 옛 다리와 그 주변의 역사적인 구시가지 지역은 그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이는 스타리 모스트가 단순한 아름다운 다리를 넘어, 다문화적 공존과 평화의 이상을 구현하는 인류의 중요한 유산임을 국제적으로 공표하는 의미를 가집니다.
특히 다리는 전후 재건과 국제 협력의 성공적인 사례이자, 갈등을 딛고 화합을 이루어낸 인간 정신의 회복력을 상징하는 기념비로 평가받습니다.
또한, 스타리 모스트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특별한 다이빙 전통으로도 유명합니다.
'모스타리(Mostari)'라고 불리는 현지 젊은이들은 수백 년간 24미터 높이의 다리 위에서 에메랄드빛 차가운 네레트바 강물로 용감하게 뛰어내리는 통과의례를 치러왔습니다.
1664년에 이 전통에 대한 첫 기록이 남아 있으며, 1968년부터는 매년 여름 공식적인 다이빙 대회가 개최되어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 관광객들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익스트림 스포츠의 국제적인 대회인 '레드불 클리프 다이빙 월드 시리즈'의 주요 개최지 중 하나로 선정되면서, 스타리 모스트의 다이빙 전통은 전 세계에 그 명성을 떨치고 있습니다.
이 다이빙은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모스타르의 강인한 정신과 살아있는 문화유산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위로 여겨집니다.
마무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모스타르의 옛 다리, 스타리 모스트는 단순한 돌다리가 아닌, 시대를 관통하며 다양한 의미를 부여받은 살아있는 역사 그 자체입니다.
오스만 제국의 아름다운 건축 유산이자 평화로운 다문화 공존의 상징이었던 이 다리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 무너지는 비극을 겪었으나, 국제사회의 연대와 주민들의 염원 속에 더욱 강력한 화합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다시 태어났습니다.
스타리 모스트는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고, 미래를 향한 평화와 공존의 가치를 끊임없이 되새기게 하는 인류의 위대한 유산으로, 앞으로도 전 세계인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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