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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강의 성스러운 속삭임: 바라나시 가트 탐방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에 위치한 바라나시는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힌두교의 성지이자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신비로운 도시다. '빛의 도시'라는 의미의 카시(Kashi)로도 불리며, 매년 수백만 명의 순례자들이 찾아와 영적인 위안을 얻고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곳이다.
갠지스강을 따라 길게 늘어선 수많은 가트(Ghat)들은 이러한 바라나시의 영적 심장부 역할을 하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다채로운 인간 군상의 삶과 종교 의식이 펼쳐지는 생생한 현장이다.
바라나시, 시간의 흐름을 초월한 영원의 도시
바라나시는 기원전 18세기부터 사람들이 정착해 살았던 유서 깊은 도시로, 무려 3천 년에서 5천 년 가까이 그 명맥을 이어온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힌다.
힌두교의 7대 성지 중 으뜸으로 여겨지는 이곳은 인도인들에게 정신적 자유와 해탈을 가져다주는 신성한 장소이다.
인도 신화에 따르면 바라나시는 이 땅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지역으로 전해지며, 갠지스강의 성스러운 물줄기와 함께 인도인들의 삶과 신앙의 깊이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가 첫 설법을 한 사르나트가 가까이 위치해 있어 불교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곳은 힌두교뿐만 아니라 불교, 자이나교 등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며 지식과 철학의 중심지로 발전해왔다.
갠지스강과 가트, 삶과 신앙의 교차점
가트(Ghat)는 갠지스강변과 맞닿아 있는 돌계단을 의미한다.
바라나시에는 갠지스강 서쪽 6km에 걸쳐 84개에서 100여 개에 달하는 가트들이 늘어서 있으며, 각각 고유한 이름과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가트들은 단순히 강으로 내려가는 통로가 아니라 힌두교도들에게는 죄를 씻고 영혼을 정화하는 성스러운 의식이 행해지는 곳이자, 일상생활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많은 힌두교도들은 갠지스강에 몸을 담그는 것이 모든 죄를 씻어주고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으며, 이는 가트가 천국으로 향하는 길목과 같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빨래를 하는 이들, 요가를 하는 이들, 점성술사에게 조언을 구하는 이들 등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펼쳐진다.
새벽을 깨우는 순례자들의 성스러운 의식
바라나시 가트의 새벽은 경건하면서도 활기찬 에너지로 가득하다.
해가 뜨기 전 이른 시간부터 수많은 순례자들이 갠지스강으로 모여들어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목욕 의식을 행한다.
차가운 강물에 몸을 담그며 신에게 기도하고,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예를 표하는 모습은 숭고한 감동을 선사한다.
보트 투어를 통해 강 위에서 이른 아침 풍경을 조망하는 것은 바라나시 여행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다.
안개 낀 강 위로 울려 퍼지는 힌두교 찬송가와 종소리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하며, 강변을 따라 펼쳐지는 일련의 의식들은 바라나시의 영적인 깊이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른 아침의 가트 풍경은 인도인들의 삶과 신앙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삶의 마지막 여정, 마니카르니카 가트
바라나시의 가트 중 가장 신성하고도 충격적인 곳은 바로 마니카르니카 가트이다.
이곳은 인도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화장터로, 힌두교도들은 이곳에서 화장되어 골분이 갠지스강에 뿌려지면 윤회의 고리를 끊고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그렇기에 24시간 내내 화장이 이루어지며, 시신을 운구하는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화장터에서는 죽음이 결코 슬픈 끝이 아닌 영원한 안식과 새로운 시작으로 여겨지며, 유가족들은 덤덤하게 고인의 마지막을 지켜본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현장은 이방인에게는 충격적일 수 있지만, 인도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이자 신성한 의식이다.
화장 비용은 장작의 종류와 양에 따라 달라지며, 이는 빈부 격차까지 드러내는 현실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밤을 수놓는 빛과 소리의 향연, 아르띠 뿌자
해가 질 무렵, 다샤스와메드 가트는 밤의 하이라이트인 아르띠 뿌자(Aarti Puja) 의식으로 활기를 띤다.
전설에 따르면 이곳은 힌두교 창조의 신 브라흐마가 시바 신을 환영하기 위해 열 마리의 말을 제물로 바치는 제사를 지낸 곳이라고 전해진다.
매일 저녁 갠지스강의 여신에게 바치는 이 웅장한 종교 의식은 여러 명의 브라만 사제들이 불꽃, 향, 꽃, 종소리, 만트라 등을 이용하여 우주의 다섯 가지 요소를 형상화하며 진행된다.
천지를 진동하는 뿔피리 소리와 함께 리드미컬하게 흔들리는 불꽃, 굵은 저음의 합창은 강변을 가득 메운 수많은 인파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 의식은 힌두교도들에게는 신과의 소통이자 정화의 시간이며, 여행자들에게는 바라나시의 강렬한 문화와 종교적 색채를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볼거리로 꼽힌다.
각기 다른 매력의 바라나시 가트들
바라나시의 가트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매력과 이야기를 품고 있다.
강가와 아시강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아씨 가트(Assi Ghat)는 다른 가트들에 비해 비교적 덜 혼잡한 편으로, 보리수 나무 아래 거대한 시바의 남근상에 기도를 하러 오는 순례자들이 많다.
이곳은 바라나시 힌두 대학 학생들이나 장기 거주자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다양한 크기와 용도의 가트들이 갠지스강을 따라 이어져 있으며, 각 가트에서는 고유한 종교 의식, 사회적 활동, 그리고 일상적인 삶의 풍경이 펼쳐진다.
강변을 따라 걷거나 보트를 타고 여러 가트들을 둘러보는 것은 바라나시의 다채로운 모습을 이해하고 인도 문화의 깊이를 체험하는 데 더없이 좋은 방법이다.
이번 포스팅은 바라나시 가트가 선사하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전달하고자 한다.
마무리
바라나시 가트는 단순한 강변의 계단이 아닌, 인도인의 삶과 신앙, 그리고 죽음이 한데 어우러진 거대한 스펙트럼이다.
새벽의 정화 의식부터 저녁의 화려한 아르띠 뿌자, 그리고 꺼지지 않는 화장터의 불꽃까지, 이곳은 인간의 존재와 영적인 의미를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드는 특별한 장소이다.
바라나시 가트를 방문하는 것은 인도의 영혼과 마주하는 가장 깊고 진정한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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