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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춘 고대 도시, 튀르키예 에페소스: 문명의 발자취를 따라
튀르키예 서부 이즈미르주 셀축 인근에 자리한 에페소스 고대 도시는 에게해 연안의 빛나는 보석이자, 고대 세계의 중요한 중심지였습니다.
오랜 역사를 통해 다양한 문명의 흥망성쇠를 목격하며 번성했던 이곳은 오늘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과거의 영광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에페소스가 지닌 다채로운 역사와 문화적 중요성,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가치를 재조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번영의 역사와 문명의 교차로
에페소스는 기원전 9세기경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이오니아 이주민들에 의해 식민 도시로 건립되었습니다.
지리적으로 에게해 연안에 위치한 항구 도시로서 일찍이 무역과 문화 교류의 중심지로 성장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스파르타, 페르시아, 페르가몬, 로마 등 여러 제국의 지배를 받으며 끊임없이 흥망성쇠를 거듭했지만, 기원전 129년 로마 제국의 아시아 속주로 편입된 후에는 소아시아의 수도로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당시 에페소스는 로마,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에 이어 로마 제국 내에서 네 번째로 큰 대도시로 성장하여 인구가 약 25만 명에 달할 정도로 번영을 누렸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에페소스는 동서양 문명이 교차하는 중요한 거점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아르테미스 신전
에페소스의 상징이자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르테미스 신전은 풍요와 다산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숭배하던 곳이었습니다.
기원전 6세기 크로이소스 왕의 지원을 받아 처음 건축된 이 웅장한 신전은 길이 137m, 너비 69m, 높이 18m의 기둥 127개를 갖춘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거대한 홍수와 방화로 여러 차례 파괴와 재건을 반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름다움과 규모는 고대인들에게 깊은 경외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페소스에서 선교 활동을 할 당시, 아르테미스 신전의 모형을 팔던 상인들과 갈등을 빚었다는 기록은 당시 신전의 영향력을 짐작하게 합니다.
아쉽게도 서기 401년에 최종적으로 파괴되어 현재는 신전의 토대와 일부 조각 파편만이 남아있지만, 그 흔적만으로도 고대 건축 기술의 정수를 엿볼 수 있습니다.
지혜의 전당, 켈수스 도서관
에페소스의 또 다른 대표적인 건축물은 바로 켈수스 도서관입니다.
서기 117년부터 135년에 걸쳐 로마 집정관 켈수스를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이 건축한 이 도서관은 알렉산드리아, 페르가몬 도서관과 함께 고대 3대 도서관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중요한 지식의 보고였습니다.
1만 2천 권에 달하는 양피지 두루마리 책을 소장하고 있었으며, 습기 방지를 위해 이중 벽으로 설계되는 등 당시의 뛰어난 건축 기술을 보여줍니다.
도서관 전면부에는 지혜(소피아), 덕성(아르테), 지능(에노이아), 지식(에피스테메)을 상징하는 네 명의 여성상 조각이 세워져 있어 그 위엄을 더합니다.
262년 고트족의 침입으로 파괴되고 지진으로 무너졌지만, 1978년 복원 작업을 통해 현재의 웅장한 모습으로 재탄생하여 에페소스의 영광을 상징하는 건축물로 남아있습니다.
도시의 심장부, 대극장과 주요 거리
에페소스 대극장은 2만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소아시아 최대 규모의 로마식 원형극장으로, 공연, 연극뿐만 아니라 정치적 집회와 검투 경기가 열리던 도시의 중심지였습니다.
헬레니즘 시대에 건설되어 로마 시대에 확장된 이 극장은 뛰어난 음향 효과와 웅장한 구조를 자랑하며,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파할 때 큰 소동이 일어났던 역사적 장소이기도 합니다.
또한, 켈수스 도서관과 헤라클레스 문 구간에 뻗어 있는 대리석으로 포장된 쿠레테스 거리는 신전과 주택가가 늘어서 있던 도시의 주요 보행자 도로였습니다.
이 거리에는 하드리아누스 신전, 트라야누스 분수, 스콜라스티카 목욕장과 완벽한 수세식 공중화장실 등 다양한 공공 건축물과 생활 시설의 유적이 남아있어 고대 로마인들의 높은 문화 수준과 일상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초기 기독교의 발자취와 성모 마리아의 집
에페소스는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도시입니다.
신약성서 사도행전에 따르면 사도 바울이 이곳에서 3년 동안 전도와 사목을 하였으며, 요한묵시록에 등장하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하나가 바로 에페소 교회입니다.
사도 요한 역시 이곳에서 활동했으며, 그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성 요한 대성당 유적이 셀축 아야술룩 언덕에 남아있습니다.
특히 에페소스 인근 뷜뷜산(Bülbüldağı)에 위치한 성모 마리아의 집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사도 요한과 함께 여생을 보냈다고 전해지는 곳으로, 기독교와 이슬람교도 모두에게 중요한 순례지입니다.
교황들의 공식 방문으로 성지로 지정되면서 그 종교적 의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쇠퇴와 현대의 발굴 및 복원
번성했던 에페소스는 기원후 10세기경 서서히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주요 원인은 지리적 변화였습니다.
도시 옆을 흐르던 카이스터 강이 오랜 세월 동안 토사를 운반하면서 항구가 점차 매몰되었고, 이로 인해 상업적 중요성을 잃게 된 도시는 점차 쇠락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지진과 이민족의 침입까지 겹치면서 결국 거대한 도시는 폐허가 되어 수 세기 동안 땅속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19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대규모 발굴 작업은 화려했던 옛 도시의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오늘날까지도 발굴과 복원 작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재 발굴된 유적은 전체의 약 20%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남아있는 유적만으로도 당시 도시의 규모와 번영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에페소스는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보호받으며 과거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마무리
튀르키예의 에페소스 고대 도시는 단순한 유적지를 넘어, 고대 그리스, 로마, 그리고 초기 기독교 문명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역사 박물관입니다.
아르테미스 신전의 웅장함부터 켈수스 도서관의 지혜, 대극장의 생생한 역동성, 그리고 성모 마리아의 집이 간직한 신성함까지, 이곳의 모든 유적은 과거의 영광과 지혜를 오늘날 우리에게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습니다.
에페소스는 과거의 시간을 거닐며 인류 문명의 위대함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되새겨볼 수 있는 특별한 여행지로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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