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어때

페트라는 기원전 4세기경 아라비아 반도 북서부와 시리아 남부에 거주하던 유목민족인 나바테아인들에 의해 건설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건조한 사막 환경 속에서 놀라운 생존력과 상업적 재능을 발휘하며 점차 세력을 확장했습니다.
페트라는 동방과 서방을 잇는 향신료, 유향, 비단 등 귀중한 교역품들의 주요 거점 역할을 수행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이를 기반으로 도시를 번영시켰습니다.
나바테아인들은 물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으며, 복잡하고 정교한 수자원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여 사막 한가운데서도 대규모 도시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암벽을 깎아 만든 거대한 저수조와 수로, 댐은 페트라의 생명줄이었고, 이러한 기술력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습니다.
또한, 헬레니즘 문화와 로마 문화의 영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자신들만의 독특한 예술 양식을 창조해냈습니다.
이들의 문화는 주로 건축물과 석상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특히 사암 절벽을 파고들어 만든 독창적인 파사드 양식은 페트라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입니다.
도시의 심장부 역할을 했던 상업 중심지로서 페트라는 국제적인 문화 교류의 장이기도 했습니다.
아랍, 그리스, 로마, 이집트 등 다양한 문명이 혼재된 독특한 양식은 나바테아 문명의 개방성과 흡수력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처럼 페트라는 단순히 유적지를 넘어, 고대 문명이 극한의 환경에서 어떻게 번영하고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웠는지를 생생하게 증명하는 살아있는 역사 박물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바테아인들의 지혜와 노력 없이는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페트라의 경이로운 모습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페트라로 들어서는 길은 그 자체로 하나의 웅장한 경험입니다.
높이 80미터에 달하는 붉은 사암 절벽 사이로 약 1.2km를 구불구불 이어지는 좁은 협곡, 바로 '시크(Siq)'를 통과해야만 도시의 핵심부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시크는 고대 나바테아인들이 도시의 방어를 위해 전략적으로 이용했을 뿐만 아니라, 자연적인 아름다움으로 방문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협곡의 폭은 가장 좁은 곳이 3미터에 불과하여, 거대한 절벽이 하늘을 가리는 장관을 연출합니다.
이 길을 걷다 보면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신비로운 분위기에 압도당하게 됩니다.
시크 양쪽 벽에는 고대 나바테아인들이 물을 끌어오기 위해 만든 수로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으며, 간간이 보이는 신상 조각이나 부조들은 숨겨진 도시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증폭시킵니다.
붉은색, 주황색, 갈색 등 다채로운 색을 띠는 사암 절벽은 햇빛의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자연이 빚어낸 예술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시크의 끝이 보일 듯 말 듯한 구불거리는 길은 여행의 묘미를 더하며, 마침내 협곡이 끝나고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에 대한 기대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립니다.
고대 나바테아인들은 이 시크를 통해 물자를 운반하고 교역을 진행했으며, 침략자들의 접근을 막는 천연 요새로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이 협곡을 걷는 동안 방문객들은 페트라가 단순히 거대한 건축물들의 집합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 완벽하게 조화된 살아있는 도심이었음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시크는 페트라의 상징적인 시작점이자, 고대 나바테아인들의 지혜와 자연의 위대함이 만나 빚어낸 최고의 걸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크 협곡의 좁은 틈을 빠져나오면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모든 이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듭니다.
바로 페트라의 상징이자 가장 유명한 유적, '알 카즈네(Al-Khazneh)', 즉 '보물창고'입니다.
높이 약 40미터, 폭 약 28미터에 달하는 이 거대한 건축물은 암벽을 깎아 만든 것으로, 완벽한 균형감과 정교한 조각 기술로 방문객들을 압도합니다.
헬레니즘 건축 양식의 영향을 받아 코린트 양식의 기둥과 섬세한 부조들이 특징이며, 상단에는 독수리와 메두사, 아마존 전사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알 카즈네는 그 이름처럼 보물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전설 때문에 오랫동안 탐험가들의 표적이 되어왔습니다.
베두인족 전설에 따르면 파라오가 이집트를 탈출할 때 숨겨둔 보물이 최상단 항아리 안에 있다고 전해지지만, 실제로는 고대 나바테아 왕의 무덤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아레타스 4세(Aretas IV)의 무덤일 가능성이 높게 거론됩니다.
밤에는 조명에 의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며, 더욱 신비로운 모습을 드러냅니다.
알 카즈네는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나바테아인들의 뛰어난 석공 기술과 예술적 감각이 집약된 걸작입니다.
수백 년에 걸쳐 자연 풍화와 침식에도 불구하고 놀랍도록 잘 보존되어 있으며, 붉은 사암의 색깔은 햇빛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아름다움을 뽐냅니다.
이 거대한 파사드는 고대 나바테아 문명의 정수이자, 그들의 영원한 안식처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는 듯합니다.
알 카즈네는 페트라 방문의 절정이자, 고대 문명의 신비로운 힘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장소입니다.
그 웅장함과 아름다움 앞에서 방문객들은 고대인들이 남긴 유산의 가치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됩니다.
이곳은 영화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의 배경이 되면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도 했습니다.

알 카즈네를 뒤로하고 계속 나아가면, 페트라의 진정한 규모와 다양성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파사드의 거리(Street of Facades)'는 수많은 무덤들이 절벽에 새겨져 있는 장관을 연출하며, 나바테아인들의 죽음과 내세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이 무덤들은 단순한 매장지가 아니라, 정교한 건축 양식과 조각으로 꾸며져 있어 고대 장례 문화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특히,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왕실 무덤(Royal Tombs)'은 페트라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항아리 무덤(Urn Tomb)', '코린트 무덤(Corinthian Tomb)', '궁전 무덤(Palace Tomb)', '비단 무덤(Silk Tomb)'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무덤은 그 시대의 건축 양식과 사회 계층을 반영하듯 독특한 디자인을 자랑하며, 특히 항아리 무덤은 내부 공간이 넓어 나중에 비잔틴 시대에 교회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들 무덤은 나바테아 왕족이나 고위 귀족의 안식처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 규모와 정교함은 당시 나바테아 왕국의 부와 권력을 상징합니다.
또한, 로마 시대에 건축된 '원형극장(Roman Theater)'은 약 3,000석 규모로, 암벽을 깎아 만든 좌석과 무대 구조가 인상적입니다.
이곳은 단순한 오락 시설을 넘어, 도시의 중요한 모임 장소이자 문화 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극장의 위치는 도시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대로변에 있어, 당시 페트라의 번성했던 도시 생활을 짐작하게 합니다.
이 외에도 콜로네이드 거리, 대신전(Great Temple), 카스르 알 빈트(Qasr al-Bint)와 같은 중요한 유적들이 도심 곳곳에 흩어져 있어, 방문객들은 고대 도시의 복합적인 구조와 기능을 직접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유적들은 페트라가 단순한 무덤 도시가 아니라, 활기 넘치고 문화적으로 풍부했던 고대 문명의 중심지였음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페트라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또 하나의 경이로운 유적은 바로 '알 데이르(Ad Deir)', 일명 '수도원'입니다.
알 카즈네보다 규모가 훨씬 크고 웅장하지만, 도보로 약 45분에서 1시간가량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만 도달할 수 있어 비교적 적은 방문객만이 이곳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이 고된 여정은 충분한 보상으로 되돌아옵니다.
알 데이르는 높이 약 45미터, 폭 약 5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파사드를 자랑하며, 알 카즈네와 유사한 헬레니즘 양식에 나바테아의 독자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습니다.
거대한 기둥과 웅장한 입구는 보는 이를 압도하며, 상단에는 거대한 항아리 모양의 장식물이 올려져 있습니다.
비잔틴 시대에 기독교 수도원으로 사용되면서 '수도원'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실제로는 알 카즈네와 마찬가지로 왕족이나 고위 인사의 무덤으로 추정됩니다.
알 데이르는 주변의 황량하고 광활한 사막 풍경과 어우러져 더욱 장엄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이곳에 오르면 멀리 아라바 계곡과 이스라엘 영토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breathtaking한 파노라마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해 질 녘에는 붉은 노을이 수도원 전체를 물들이며 환상적인 장관을 선사합니다.
알 데이르 주변에는 작은 동굴들과 고대 제단들이 흩어져 있어, 당시 나바테아인들의 종교적 신념과 의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곳은 페트라의 물리적인 끝이자, 방문객들이 고대 문명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깊이 성찰하게 되는 영적인 공간이기도 합니다.
알 데이르에 오르는 길은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정상에서 마주하는 압도적인 경치와 건축물의 웅장함은 모든 고생을 잊게 할 만큼 강렬한 감동을 안겨줍니다.

사막 한가운데에 건설된 페트라가 수천 년 동안 번성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비결 중 하나는 나바테아인들의 경이로운 수자원 관리 기술에 있었습니다.
이들은 물이 생존에 필수적임을 인지하고, 건조한 환경에서 물을 효율적으로 확보하고 저장하며 분배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페트라 곳곳에는 이러한 노력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암벽을 따라 정교하게 파놓은 수로(water channel) 시스템입니다.
이 수로들은 도시 외곽의 샘이나 빗물을 모아 시크 협곡을 지나 도심까지 연결되었고, 저수조(cistern)와 댐(dam)으로 물을 저장했습니다.
특히 시크 협곡 내부에 조성된 수로는 약 1.2km에 달하는 길이에도 불구하고, 물의 흐름을 효율적으로 조절하기 위한 미세한 경사를 유지하고 있어 당시 나바테아인들의 측량 및 토목 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이들은 빗물 집수 시스템을 통해 우기 동안 내리는 빗물을 최대한 모아 건기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심지어 정화 시설까지 갖추어 식수를 공급했습니다.
도시 내부에는 공중목욕탕과 분수대가 존재했으며, 이는 물이 단순히 생존을 넘어 문화와 생활 수준의 상징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수자원 관리 시스템 덕분에 나바테아인들은 농업을 영위하고, 가축을 기르며, 대규모 인구가 사막 도시에서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물을 확보하는 능력이 교역의 중심지로서 페트라의 위상을 높이는 데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사막을 건너는 대상들은 페트라에서 물을 보급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 도시는 필수적인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나바테아인들의 수자원 관리 기술은 고대 문명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업적이며, 오늘날 건조 기후 지역의 지속 가능한 개발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이는 페트라가 단순히 아름다운 건축물들의 집합이 아니라, 인간의 지혜와 자연 환경에 대한 깊은 이해가 만들어낸 생명력 넘치는 도시였음을 증명합니다.

나바테아 왕국은 기원후 106년 로마 제국의 트라야누스 황제에 의해 정복당하면서 로마의 아라비아 속주로 편입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페트라는 로마의 직접적인 통치하에 놓였고, 한때 번성했던 교역의 중심지로서의 위상도 점차 약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로마 제국이 새로운 교역로를 개척하고 해상 무역이 발달하면서, 내륙의 페트라를 통과하는 대상들의 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로마 지배 하에서도 도시는 일정 부분 번영을 유지했으나, 점차 그 중요성을 잃어갔습니다.
기원후 4세기 이후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일부 유적들은 교회로 개조되기도 했습니다.
가장 치명적인 타격은 잦은 지진이었습니다.
특히 363년과 747년에 발생한 대지진은 도시의 많은 부분을 파괴했고, 복구되지 않은 채로 방치되면서 페트라는 서서히 황폐해졌습니다.
이후 이슬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도시의 중요성은 더욱 감소했으며, 12세기 십자군 시대에 잠시 요새로 활용되기도 했지만, 결국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수백 년 동안 유럽인들에게는 그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은 '잃어버린 도시'로 남게 된 것입니다.
페트라가 서구 세계에 다시 알려진 것은 1812년 스위스 탐험가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하르트(Johann Ludwig Burckhardt)에 의해서였습니다.
그는 아랍 의상으로 변장하고 현지 베두인족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시크 협곡을 통과하여 알 카즈네를 발견했습니다.
그의 기록은 유럽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후 많은 탐험가와 고고학자들이 페트라를 찾기 시작하면서 잊혔던 고대 도시의 비밀이 하나둘씩 밝혀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페트라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인정받으며, 전 세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요르단의 가장 중요한 문화유산이 되었습니다.
쇠퇴와 망각의 시간을 거쳐 재발견된 페트라의 역사는 고대 문명의 흥망성쇠와 인간의 끊임없는 탐구 정신을 동시에 보여주는 극적인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