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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바스 로만 바스: 고대 로마 문명의 숨결이 살아있는 치유의 샘
영국 잉글랜드 남서부의 아름다운 도시 바스에 위치한 로만 바스는 고대 로마 시대의 탁월한 건축 기술과 문화, 그리고 인간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유적지입니다.
이곳은 단순한 목욕 시설을 넘어, 당시 로마인들의 사회적 교류, 종교적 신념, 그리고 치유에 대한 염원이 한데 어우러진 복합적인 공간이었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바스의 로만 바스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로마 시대에 어떤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깊이 있게 탐구해보고자 합니다.
신성한 샘물, 아쿠아 술리스와 로마의 정복
바스 지역은 오랜 옛날부터 자연적으로 솟아나는 뜨거운 온천수로 유명했습니다.
이 온천수는 켈트족에게 신성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으며, 그들은 이곳을 치료와 재생의 여신 술리스에게 바쳐진 곳으로 여겼습니다.
서기 1세기, 로마 제국이 브리타니아를 정복하면서 이 지역의 전략적, 문화적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로마인들은 켈트족의 여신 술리스와 자신들의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를 결합하여 '술리스 미네르바'라는 새로운 신을 숭배하며, 이 신성한 샘물 위에 웅장한 목욕 시설과 신전을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이곳을 '아쿠아 술리스(Aquae Sulis)'라고 불렀는데, 이는 '술리스의 물'이라는 뜻으로,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치유와 종교적 의미를 담은 이름이었습니다.
로마인들은 특유의 공학 기술을 활용하여 샘물 주변에 견고한 구조물을 세우고, 뜨거운 물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대규모 목욕 단지를 조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로마 제국의 광대한 영토 곳곳에 퍼져 있던 온천 도시 건설의 전형적인 예시였으며, 브리타니아 내에서도 가장 중요한 온천 도시 중 하나로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이 초기 건설 단계부터 로만 바스는 단순한 위생 시설을 넘어, 로마 문화의 상징이자 사회적 중심지로 자리매김할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고대 로마 목욕 문화의 정수와 건축 기술
로만 바스는 단순한 목욕탕이 아니었습니다.
이곳은 로마인들의 일상생활과 문화, 그리고 사회적 상호작용의 중심지였습니다.
당시 로마인들에게 목욕은 단순한 청결 유지를 넘어, 운동, 사교, 휴식, 그리고 비즈니스까지 겸하는 복합적인 활동이었습니다.
로만 바스는 크게 대형 욕장(Great Bath), 원형 욕장(Circular Bath), 동쪽 욕장(East Baths), 서쪽 욕장(West Baths)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각각의 공간은 다른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가장 중심에 위치한 대형 욕장은 온천수를 담고 있는 거대한 노천 풀로, 기둥으로 둘러싸여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이곳에서 로마인들은 몸을 담그고 휴식을 취하거나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동쪽과 서쪽 욕장에는 각각 쿨다리움(Caldarium, 뜨거운 물 목욕탕), 테피다리움(Tepidarium, 미온수 목욕탕), 프리기다리움(Frigidarium, 냉수 목욕탕)과 같은 다양한 온도 조절 시설이 갖춰져 있었습니다.
로마인들은 이 공간들을 순서대로 이동하며 몸의 피로를 풀고 혈액 순환을 촉진했습니다.
이러한 복잡한 목욕 과정은 로마인들의 건강 관리와 생활 방식의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이 모든 시설은 로마의 뛰어난 건축 및 수리 공학 기술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지하에서 솟아나는 뜨거운 온천수를 효과적으로 가두고, 배수 시스템을 구축하며, 수많은 사람의 이용에도 불구하고 위생을 유지하는 기술은 당시로서는 경이로운 수준이었습니다.
특히, 바닥 난방 시스템인 '히포카우스투스(Hypocausts)'는 뜨거운 공기를 바닥 아래로 순환시켜 실내 온도를 따뜻하게 유지하는 혁신적인 방식이었습니다.
이러한 기술들은 로만 바스를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로마 문명의 정수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로 만들었습니다.
치유의 샘물과 종교적 의미의 심화
바스의 온천수는 로마인들에게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닌, 신성한 기운을 가진 치유의 물로 여겨졌습니다.
지하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이 온천수는 약 46℃의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며, 칼슘, 황산염, 염화물 등 다양한 미네랄을 함유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인들은 이 물이 관절염, 류마티스 등 다양한 질병을 치료하는 효능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켈트족 시대부터 이어져 온 것이었으며, 로마인들은 이를 자신들의 종교 체계 속으로 흡수했습니다.
특히, 술리스 미네르바 여신은 치유의 능력과 지혜를 동시에 상징하며, 아쿠아 술리스의 수호신으로서 숭배되었습니다.
로만 바스 단지 내에는 여신에게 바쳐진 신전과 제단이 있었고, 사람들은 치유를 빌거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동전이나 저주판(curse tablet) 등을 샘물에 던져 넣었습니다.
이 저주판에는 자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에게 복수를 기원하는 내용이 새겨져 있어, 당시 사람들의 개인적인 염원과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샘물에 대한 깊은 신뢰와 종교적 행위는 로만 바스를 단순한 공중 목욕탕이 아닌, 영적인 중심지이자 치유의 성지로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로만 바스는 물의 물리적 효능과 인간의 정신적, 종교적 믿음이 결합된 독특한 공간으로서, 당시 로마인들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로마 제국 이후의 쇠퇴와 잊혀진 시간
서기 5세기 초, 로마 제국이 브리타니아에서 철수하면서 로만 바스는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로마인들의 떠남과 함께 대규모의 유지 보수 인력과 자원이 사라졌고, 복잡한 급수 및 배수 시스템은 점차 기능을 잃어갔습니다.
건물의 일부는 홍수와 지진 등으로 파괴되었고, 신성했던 온천수는 더 이상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아 진흙과 잔해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한때 번성했던 아쿠아 술리스는 점차 잊혀진 유적이 되었고, 그 위로는 새로운 정착지들이 들어섰습니다.
앵글로색슨족과 노르만족의 지배를 거치면서 로마 시대의 흔적은 땅속 깊이 묻히거나 파괴되었습니다.
중세 시대에는 온천수가 여전히 솟아났지만, 로마 시대와 같은 대규모 목욕 단지는 존재하지 않았고, 그저 지역 주민들의 간단한 목욕이나 치료 목적으로 소규모 이용이 이루어지는 정도였습니다.
18세기 이르러 바스는 다시 한번 온천 도시로서의 명성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의학계는 온천수의 치료 효능에 주목했고, 많은 귀족과 부유층이 건강 증진과 휴식을 위해 바스를 방문했습니다.
하지만 이때 개발된 시설들은 로마 시대의 유적 위에 세워진 것이었으며, 고대 로마의 거대한 목욕 시설은 여전히 땅속에 잠들어 있었습니다.
로만 바스가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은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이르러 대규모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면서였습니다.
수백 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고대 로마의 목욕 시설이 다시 세상에 드러났고, 고고학자들은 그 규모와 보존 상태에 경탄했습니다.
이 재발견은 바스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로마 시대의 유적을 보존하고 연구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현대 로만 바스의 보존과 유네스코 세계유산
재발견된 로만 바스는 단순한 고고학적 유적을 넘어,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인식되었습니다.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 로만 바스를 보존하고 대중에게 공개하기 위한 노력이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발굴된 유적은 섬세한 복원 과정을 거쳐 오늘날 방문객들이 안전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정비되었습니다.
특히, 로만 바스는 1987년 도시 바스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유네스코는 바스 시를 '로마 제국의 탁월한 온천 도시'이자 '18세기 조지 왕조 시대 도시 계획의 걸작'으로 평가하며 그 보편적 가치를 인정했습니다.
로만 바스는 고대 로마의 건축 기술, 수리 공학, 그리고 사회 문화적 삶을 이해하는 데 있어 비할 바 없는 자료를 제공합니다.
또한, 이곳은 끊임없이 솟아나는 자연 온천수를 기반으로 수천 년에 걸쳐 인간의 삶과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로만 바스 박물관은 고대 유적을 보호하면서도, 방문객들에게 생생한 역사 교육과 문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최첨단 보존 기술이 적용되어 유물의 부식을 막고, 섬세한 발굴품들이 전시되어 로마 시대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로만 바스의 보존은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 세대에 전달하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며,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빛내고 있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방문객 체험과 현대적 의미
오늘날 로만 바스는 매년 백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는 영국 최고의 관광 명소 중 하나입니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과거 로마인들이 거닐었던 길을 따라 걸으며, 2천 년 전의 시간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박물관은 대형 욕장 주변을 둘러싸고 있으며, 다양한 전시물과 인터랙티브 가이드를 통해 고대 로마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특히, 스마트폰 앱이나 오디오 가이드를 활용하면 더욱 풍부한 해설을 들으며 각 유적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로마인 복장을 한 배우들이 곳곳에서 당시의 생활상을 재현하여 방문객들의 몰입감을 높여줍니다.
밤에는 조명이 켜져 유적 전체를 신비롭고 웅장한 분위기로 만들며, 특별한 '횃불의 밤(Torchlit Evening)' 행사는 로만 바스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줍니다.
비록 오늘날 방문객들은 로만 바스의 온천수에 직접 몸을 담글 수는 없지만, 인접한 펌프 룸(Pump Room)에서는 고대 온천수를 현대적으로 정화하여 마셔볼 수 있습니다.
이곳은 18세기 바스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우아한 공간으로, 고전적인 분위기 속에서 차와 스콘을 즐기며 온천수의 맛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로만 바스는 단순한 유적지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끊임없이 대화하는 공간입니다.
이곳은 고대 로마인들의 지혜와 삶의 방식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현대인에게 역사적 통찰과 문화적 영감을 제공하는 중요한 장소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마무리
영국 바스의 로만 바스는 고대 로마의 영광과 지혜, 그리고 자연의 신비로운 힘이 어우러진 독특한 유산입니다.
신성한 샘물 '아쿠아 술리스'를 중심으로 번성했던 이 도시는 로마인들의 뛰어난 건축 기술과 정교한 목욕 문화를 생생하게 증언합니다.
수세기에 걸쳐 잊혀졌다가 다시 빛을 본 로만 바스는 오늘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으며, 전 세계 방문객들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과거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경험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 인류 문명의 깊이와 지속적인 변화를 성찰하게 하는 특별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로만 바스는 앞으로도 고대 로마의 숨결을 간직한 채, 시간을 초월하여 우리에게 역사의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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