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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 속에 잠든 마야 문명의 보석: 팔렝케 유적지의 신비와 위대함
멕시코 치아파스 주의 울창한 열대림 속에 자리 잡은 팔렝케는 마야 문명의 가장 아름답고 중요한 유적지 중 하나입니다.
한때 '큰 물'이라는 뜻의 라캄하(Lakamha)로 불리며 7세기에 전성기를 구가했던 이곳은 건축적 정교함과 풍부한 역사적 기록으로 전 세계 고고학자와 관광객들의 발길을 이끄는 곳입니다.
유카탄 반도의 치첸이트사, 과테말라의 티칼과 함께 마야 3대 유적지로 손꼽히는 팔렝케는 밀림에 파묻혀 있다가 18세기 후반에야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현재까지도 발굴이 진행 중인 살아있는 고대 도시입니다.
이번 포스팅은 팔렝케의 기원에서부터 황금기, 주요 건축물 그리고 파칼 대왕의 신비로운 무덤에 이르기까지, 이 위대한 마야 도시의 모든 것을 깊이 있게 탐구하고자 합니다.
팔렝케의 태동과 초기의 시련
팔렝케는 기원전 226년에 가장 오래된 건물이 세워졌다고 추정되며, 고전기 초기에 도시가 건립된 것으로 보입니다.
기록에 남아있는 초대 왕인 쿠크 발람 1세가 431년부터 통치하며 팔렝케의 왕조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후 여러 왕들이 왕위를 계승하며 도시의 기반을 다졌으나,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에 이웃한 강대국 칼라크물과의 반복되는 충돌로 인해 큰 시련을 겪었습니다.
특히 611년 칼라크물의 대대적인 침공은 팔렝케를 거의 무정부 상태로 만들 정도로 심각한 타격을 주었으며, 이 시기는 팔렝케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흑역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혼란의 시기에 기존 왕족들이 희생되면서, 모계 혈통을 통해 키니치 하나브 파칼이라는 새로운 인물이 왕위에 오를 기회를 맞게 됩니다.
이는 부계 계승을 원칙으로 하던 마야 사회에서는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파칼 대왕, 팔렝케의 황금기를 열다
615년 12세의 나이로 즉위한 키니치 하나브 파칼 1세는 무려 68년간 팔렝케를 통치하며 도시를 전성기로 이끌었습니다.
그는 불과 몇 년 전 칼라크물에 의해 폐허가 될 뻔했던 팔렝케를 부활시킨 명군으로 평가받습니다.
파칼 대왕의 치세 동안 팔렝케는 정치적 안정과 군사적 강성함을 바탕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티칼을 능가할 정도로 번영하는 마야 문명의 중심지로 발돋움했습니다.
그는 수많은 건물을 증축하고 도시를 재건하며 팔렝케의 독자적인 건축 양식과 예술을 꽃피웠습니다.
그의 오랜 재위 기간 동안 세워진 거대한 건축물들은 팔렝케가 누렸던 황금기의 영화를 오늘날까지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의 재위 25년까지는 어머니 삭 쿠크가 섭정을 하며 파칼의 통치를 도왔다고 전해집니다.
비문의 신전과 파칼 대왕의 신비로운 무덤
팔렝케 유적지에서 가장 대표적이고 중요한 건축물은 단연 '비문의 신전'입니다.
이 웅장한 9층 피라미드 신전은 파칼 대왕의 명령으로 675년경에 지어졌으며, 마야 유적 중 두 번째로 긴 마야 문자 비문이 새겨져 있어 '비문의 신전'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러나 이 신전이 세상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준 것은 1952년, 멕시코 고고학자 알베르토 루스 루이예가 신전 지하에서 도굴되지 않은 파칼 대왕의 무덤을 발견하면서부터입니다.
지하 27m 깊이에 위치한 이 묘실은 길이 9m, 너비 4m, 높이 7m 규모로, 왕의 시신은 비취 모자이크 가면과 화려한 부장품으로 장식된 채 거대한 석관에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5톤에 달하는 석관 덮개에 새겨진 독특한 부조는 한때 '팔렝케 우주인설'이라는 초고대문명설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으나, 학계에서는 마야의 세계수와 파칼 왕의 재생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왕궁과 십자가 건물군: 팔렝케 건축의 정수
팔렝케를 상징하는 또 다른 핵심 건축물은 '궁전(Palace)'입니다.
약 400년에 걸쳐 지어진 이 왕궁은 여러 개의 작은 건물과 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히 마야 문명권에서는 보기 드문 4층 높이의 천문대 탑이 인상적입니다.
이 탑은 천체 관측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궁전 내부에는 아름다운 석조 조각으로 장식된 회랑과 심지어 목욕탕까지 발견되어 당시 마야 엘리트층의 높은 문화 수준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비문의 신전 맞은편에는 '십자가의 신전 건물군'이 있습니다.
이는 파칼의 아들 칸 발람 2세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것으로, '십자가의 신전', '나뭇잎 십자가의 신전', '태양의 신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신전들은 각각 마야 신화를 상징하는 부조들을 내부에 간직하고 있으며, 그중 '십자가의 신전'은 중앙에 새겨진 세계수 문양 때문에 십자가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실제로는 마야 우주론의 핵심 요소인 세계수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밀림 속으로 사라진 위대한 도시의 몰락과 재발견
파칼 대왕 사후 그의 아들들이 왕위를 이었지만, 팔렝케는 8세기 말부터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변 도시 국가들과의 끊임없는 전쟁과 고전기 마야 문명 전반의 붕괴 현상이 겹치면서, 팔렝케는 800년을 기점으로 대규모 건축 활동이 중단되고 인구가 급감했습니다.
결국 도시는 정글 속으로 버려져 약 800년 동안 세상의 기억에서 잊힌 채 잠들어 있었습니다.
1520년대 스페인 정복자들이 도착했을 때 이미 팔렝케는 거의 무인 상태의 폐허였습니다.
1784년에 처음 발견된 이후 20세기 초부터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되었고, 현재까지도 도시 전체 면적의 10% 정도만이 발굴된 상태로 수천 개의 건축물이 여전히 밀림 속에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팔렝케의 재발견은 고대 마야 문명에 대한 이해를 혁신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무리
팔렝케 마야 유적지는 단순한 폐허를 넘어, 고대 마야 문명의 예술적, 건축적, 지적 성취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살아있는 박물관입니다.
파칼 대왕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 번성했던 이 도시는 정교한 건축물과 신비로운 상징들, 그리고 미스터리한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오늘날에도 계속되는 발굴 작업은 팔렝케가 숨기고 있는 더 많은 비밀들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는 인류 문명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고대 마야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줍니다.
팔렝케는 과거의 영광을 넘어 미래 세대에게도 영감을 주는 불멸의 유산으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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