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페수스 고대 도시 -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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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잊은 도시, 튀르키예 에페수스: 고대 문명의 찬란한 유산


튀르키예 서부 에게해 연안에 자리한 고대 도시 에페수스는 과거의 영광을 고스란히 간직한 살아있는 역사 박물관입니다.
수천 년에 걸쳐 그리스, 로마, 비잔틴 문명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는 이곳은 한때 소아시아의 심장부이자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에페수스의 신비로운 과거와 현재를 탐험하며, 고대인들의 삶과 건축, 문화 예술을 생생하게 느껴보는 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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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해를 품은 고대 그리스 식민 도시의 탄생

에페수스는 기원전 10세기경 고대 그리스 아테네인들의 식민 도시로 처음 건설되었습니다.
에게해 연안의 비옥한 카이스트로스강 하구에 위치하여 일찍부터 상업 요충지로 발전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지녔습니다.
그리스인들은 이곳에서 아르테미스 여신을 주신으로 숭배하며 도시의 번영을 기원했습니다.
이후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기도 했으나, 기원전 4세기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정복된 후 새로운 도시 계획 아래 헬레니즘 문명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를 거치며 에페수스는 소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상업 도시이자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특히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인구가 20만에서 25만 명에 달하는 대도시로 성장하며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당시 에페수스는 아시아 속주의 수도로서 지중해 동부 교역의 핵심 거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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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아르테미스 신전의 영광과 몰락

에페수스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던 아르테미스 신전입니다.
이 신전은 기원전 6세기경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에 의해 처음 재건되었고, 이후 여러 차례 파괴와 재건을 거듭하며 그 규모와 웅장함을 더해갔습니다.
재건축된 신전은 길이 137m, 너비 69m에 달하며 높이 18m의 대리석 기둥 127개가 세워진 경이로운 건축물이었습니다.
풍요와 생명의 여신으로 숭배되던 아르테미스에게 헌정된 이 신전은 에페수스 시민들의 정신적 구심점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원전 4세기에 방화로 파괴되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의 재난을 겪으며 그 위용을 잃어갔습니다.
기원후 5세기 기독교가 확산되면서 마리아 성당으로의 순례가 부상하자 아르테미스 신전의 인기는 쇠퇴했으며, 현재는 몇 개의 대리석 조각만이 남아 당시의 영광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테미스 신전은 에페수스의 역사적, 문화적 중요성을 증명하는 상징으로 남아있습니다.


로마 문명의 정수, 셀수스 도서관과 웅장한 극장

로마 시대 에페수스는 건축 기술의 정점을 보여주는 수많은 걸작을 탄생시켰습니다.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이 셀수스 도서관입니다.
서기 117년경, 당시 소아시아 총독이었던 율리우스 셀수스 폴레마이아누스를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이 지은 이 도서관은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코린트 양식과 이오니아 양식이 혼합된 화려한 정면은 지혜, 미덕, 지성, 지식을 상징하는 네 여신상으로 장식되어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약 1만 2천 권에서 1만 5천 권에 달하는 양피지 두루마리를 소장했던 이곳은 습기로부터 책을 보호하기 위해 내벽과 외벽 사이에 약 91cm의 공간을 두는 등 당시의 과학적인 건축 기술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비록 3세기 고트족의 침입과 지진으로 파괴되었으나, 오스트리아 고고학자들의 발굴과 복원 작업을 통해 오늘날과 같은 위풍당당한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또한, 2만 4천 명에서 2만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었던 거대한 원형 극장 역시 로마 시대 에페수스의 번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입니다.
이곳에서는 연극 공연과 음악회는 물론, 검투사 시합과 시민 회의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대리석으로 포장된 쿠레테스 거리와 하드리아누스 신전, 스콜라스티카 목욕탕, 그리고 당시의 완벽한 수세식 공중 화장실 등 수많은 유적들이 에페수스에 방문하는 이들에게 고대 로마 도시의 삶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초기 기독교 역사 속 중요한 성지

에페수스는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신약성서 사도행전에 따르면 사도 바울이 이곳에서 활발한 전도 활동을 펼쳤으며,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 하나가 바로 에페수스 교회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에페수스는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중요한 성지 순례지였습니다.
또한, 예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가 사도 요한과 함께 에페수스에서 여생을 보냈다고 전해지며, 불불 산에 위치한 성모 마리아의 집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기독교 순례자들이 찾는 장소입니다.
이처럼 에페수스는 이교 신앙과 그리스-로마 문명, 그리고 초기 기독교가 공존하며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했던 의미 깊은 장소입니다.


자연의 도전과 인류의 복원 노력

로마 시대의 영광을 뒤로하고 에페수스는 여러 요인으로 인해 점차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카이스트로스강에서 유입되는 퇴적물로 인해 항구가 점차 메워진 것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한때 번성했던 항구 도시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3세기의 고트족 침입과 614년의 대지진 등 자연재해와 외부 침략은 도시를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에페수스는 10세기경 완전히 버려진 도시가 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부터 영국과 오스트리아 고고학자들에 의해 대규모 발굴 작업이 시작되면서, 땅속에 묻혀 있던 찬란한 고대 도시의 모습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발굴된 많은 유물들은 현재 빈의 에페소스 박물관과 셀축의 에페수스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현재까지도 발굴 및 복원 작업은 계속되고 있으며, 튀르키예 당국은 발굴 현장을 관광 상품으로 공개하며 유산 보존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습니다.


마무리

튀르키예 셀축에 자리한 에페수스는 과거의 영화를 웅변하는 고대 유적들이 가득한 곳입니다.
아르테미스 신전의 터에서부터 셀수스 도서관, 대극장, 하드리아누스 신전, 그리고 쿠레테스 거리의 수많은 유적들은 고대 문명의 지혜와 예술적 감각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에페수스는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서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여행자들의 발길을 이끌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에페수스를 방문하는 것은 단순히 유적을 보는 것을 넘어, 고대인들의 삶과 정신을 직접 경험하는 특별한 여정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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