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리아 폼페이 기둥 - 이미지

이미지 출처 : pixabay

알렉산드리아의 폼페이 기둥: 고대 로마와 이집트의 거대한 역사적 증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우뚝 솟은 폼페이 기둥은 고대 세계의 웅장함과 끊임없는 역사적 변화를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유적입니다.
기원전 3세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에 번성했던 이 도시는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에서도 그 명성을 이어갔으며, 폼페이 기둥은 그 시대의 중요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높이 약 27미터에 달하는 이 거대한 화강암 기둥은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로마 제국의 위엄, 알렉산드리아의 문화적 중요성, 그리고 종교적 변화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이 신비롭고 장엄한 기둥의 기원과 명칭의 오해, 건축적 특징, 그리고 그것이 지닌 역사적 중요성에 대해 심도 깊게 탐구하며,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번영과 몰락의 흔적을 따라가 보고자 합니다.


알렉산드리아 폼페이 기둥 - 이미지

폼페이 기둥 명칭의 기원과 그 역사적 오해

알렉산드리아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폼페이 기둥은 그 이름 때문에 흔히 로마 공화정 시대의 유명한 장군인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와 관련이 있다고 오해받지만, 실제로는 약 400년 후인 서기 297년에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에게 헌정된 기념물입니다.
폼페이우스는 기원전 48년에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패한 후 이집트로 도주했다가 암살당했기 때문에, 이 기념비와는 시간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폼페이 기둥'이라는 명칭은 중세 시대의 아랍인들이 이 기둥의 웅장함과 고대의 흔적을 보고 폼페이우스라는 유명한 인물과 연결 지으면서 붙여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명칭은 오랜 세월 동안 널리 사용되어 왔으며, 오늘날에도 이 기둥을 지칭하는 비공식적인 이름으로 굳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진실은 이 기둥이 알렉산드리아에서 발생한 또 다른 중요한 역사적 사건, 즉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고 도시를 구원한 공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오해는 역사가 기록되고 해석되는 과정에서 종종 발생하는 현상이며, 폼페이 기둥의 경우 특히 그러한 사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실제로 이 기둥은 황제의 강력한 통치력과 알렉산드리아 시민들에 대한 그의 자비로운 태도를 상징하는 증거로 세워졌으며, 고대 이집트의 지식과 로마의 공학 기술이 결합된 산물이기도 합니다.
기둥에 새겨진 비문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를 칭송하며, 그가 도시의 번영에 기여했음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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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페움 신전 터와 기둥의 건축 배경

폼페이 기둥은 고대 알렉산드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종교 중심지였던 세라페움 신전의 터에 세워졌습니다.
세라페움은 이집트의 신 세라피스(오시리스와 아피스의 결합 형태)를 숭배하던 곳으로, 헬레니즘 시대에 프톨레마이오스 1세 또는 2세에 의해 지어진 이집트와 그리스 문화가 융합된 웅장한 신전이었습니다.
당시 세라피스는 알렉산드리아의 수호신으로서 지대한 영향력을 가졌으며, 신전은 단순히 종교적 기능뿐만 아니라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곳에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부속 도서관이 위치하여 수많은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소장하고 있었습니다.
폼페이 기둥은 이처럼 신성하고 역사적인 터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서기 297년, 로마 제국 내에서 심각한 곡물 부족과 경제난으로 인해 알렉산드리아에서는 도미티우스 도미티아누스(Domitius Domitianus)가 주도하는 반란이 일어났고,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도시를 포위한 후 반란을 진압했습니다.
오랜 포위와 진압 과정에서 도시는 큰 피해를 입었지만, 황제는 알렉산드리아 시민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도시의 재건을 돕고 곡물을 지원했습니다.
이 기둥은 이러한 황제의 '구원'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알렉산드리아 시민들이 세운 것으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이 기둥은 황제 숭배의 상징이자, 도시의 재건과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폼페이 기둥의 웅장한 건축미와 공학적 경이로움

폼페이 기둥은 그 거대한 규모와 정교한 건축미로 고대 로마 공학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기둥의 총 높이는 기단을 포함하여 약 26.85미터(88피트)에 달하며, 특히 기둥의 샤프트(몸체) 부분은 아스완 근처에 있는 이집트 남부의 채석장에서 가져온 붉은 아스완 화강암 단일 석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샤프트의 높이만 약 20.46미터(67피트)이며, 지름은 기단부에서 약 2.7미터에 이릅니다.
이러한 거대한 단일 석재를 채석하고,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알렉산드리아까지 운반한 후, 수직으로 세우는 과정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대규모 공학 프로젝트였습니다.
고대인들이 어떻게 이러한 작업을 수행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측이 존재하지만, 아마도 정교한 도르래 시스템, 경사로, 그리고 엄청난 인력을 동원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기둥의 상단에는 코린트 양식의 주두(기둥머리)가 얹혀 있는데, 정교하게 조각된 아칸서스 잎사귀 문양이 특징입니다.
원래는 그 위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는 소실되어 찾아볼 수 없습니다.
기둥의 하부에는 거대한 돌로 이루어진 원형 기단이 있으며, 이 기단에는 당시 황제를 칭송하는 그리스어 비문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기둥 자체의 웅장함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건축적 배치 또한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도시 계획과 미적 감각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이 기둥은 고대 이집트의 채석 기술과 로마의 공학 기술, 그리고 헬레니즘 시대의 미학이 결합된 독특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상징과 로마 제국의 권위

폼페이 기둥은 단순한 기념비를 넘어,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문화적, 정치적 중요성과 로마 제국의 강력한 권위를 동시에 상징하는 건축물이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기원전 331년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건설된 이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에 세계적인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했습니다.
특히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파로스 등대는 그 명성이 자자했으며, 지중해 무역의 요충지로서 경제적 번영을 누렸습니다.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 이후에도 알렉산드리아는 제국 내에서 로마 다음가는 대도시이자 이집트 곡물 생산의 심장이었습니다.
제국 전체의 식량 공급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알렉산드리아의 중요성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직접 대규모 군사를 이끌고 반란을 진압할 만큼 절대적이었습니다.
폼페이 기둥은 이러한 알렉산드리아의 전략적 중요성과 황제에 대한 시민들의 충성심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황제의 강력한 통치력과 제국의 안정성을 상징하며, 어떠한 반란이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는 로마의 위엄을 과시하는 수단이었습니다.
기둥이 세워진 세라페움 신전 터는 이미 수세기 동안 도시의 영적, 문화적 중심지였기 때문에, 이곳에 세워진 기둥은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로마 제국 통치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고리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이 기둥은 알렉산드리아 시민들에게 로마 제국의 존재감을 상기시키고, 동시에 도시의 재건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불어넣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둥 주변 유적과 고고학적 발굴의 중요성

폼페이 기둥이 서 있는 세라페움 터는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숨겨진 보물들을 간직한 중요한 고고학적 발굴 현장입니다.
기둥 주변에서는 고대 신전의 흔적들, 특히 거대한 지하 통로와 방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들은 세라페움의 복잡한 구조와 의례를 엿볼 수 있게 합니다.
발굴된 유물 중에는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와 로마 시대의 조각상, 제단, 비문 등이 포함되어 있어 당시의 종교 생활과 예술 양식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발견은 '나일 강 수위 측정기(Nilometer)'의 존재입니다.
이는 나일강의 연간 범람 수위를 측정하여 농업 생산량을 예측하고 세금을 부과하는 데 사용되던 중요한 시설로, 이집트 경제에서 나일강의 역할이 얼마나 절대적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기둥이 서 있는 지역은 알렉산산드리아 도서관의 부속 도서관인 '작은 도서관'이 위치했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주 도서관이 파괴된 후에도 상당량의 파피루스 두루마리가 이곳에 보관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는 그 흔적을 찾기 어렵습니다.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이루어진 고고학적 탐사는 이 지역의 역사적 중요성을 재확인시켜 주었으며,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모습을 복원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습니다.
폼페이 기둥 자체는 신전 파괴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남아있어, 파괴된 세라페움의 유일한 상층 구조물로 남아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영광을 증언하는 살아있는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 대한 지속적인 발굴과 연구는 알렉산드리아의 숨겨진 역사를 밝혀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교 신전의 파괴와 기독교 시대의 변화

로마 제국이 4세기 말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하면서,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로마의 이교 신전들은 대대적인 박해와 파괴에 직면했습니다.
서기 391년,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의 칙령에 따라 이교 신전들의 폐쇄와 파괴가 명령되었고, 알렉산드리아의 세라페움 신전 또한 이 폭력적인 종교적 전환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기독교 대주교인 테오필루스(Theophilus)의 주도 아래, 광적인 기독교 군중들은 세라페움으로 몰려가 신전을 약탈하고 파괴했습니다.
고대의 아름다운 조각상들은 부서지고, 신전의 돌들은 기독교 교회 건설에 재활용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세라피스 신의 거대한 조각상도 파괴되었으며, 그 외 수많은 유물과 문헌들이 사라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대적인 파괴의 와중에도 폼페이 기둥은 놀랍게도 살아남았습니다.
기둥이 파괴되지 않고 보존될 수 있었던 정확한 이유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몇 가지 추측이 가능합니다.
첫째, 기둥의 엄청난 크기와 단단함 때문에 파괴하기가 물리적으로 매우 어려웠을 것입니다.
둘째, 기둥 자체가 당시에는 이미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업적을 기념하는 세속적인 기념물로 인식되었거나, 혹은 기독교화된 사회에서 재해석되어 새로운 상징으로 기능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제로 중세 시대에는 기둥 위에 기독교 십자가가 세워졌다는 기록도 있어, 기독교인들이 이 기둥을 자신들의 상징으로 전유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어찌 되었든, 폼페이 기둥은 이교 신전의 몰락과 기독교의 부상이라는 고대 세계의 거대한 종교적 격변 속에서도 굳건히 서서 역사의 증인이 되고 있습니다.


현대의 폼페이 기둥: 관광과 보존의 중요성

오늘날 폼페이 기둥은 알렉산드리아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명소 중 하나이자, 고대 이집트와 로마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유적입니다.
웅장한 기둥이 홀로 서 있는 모습은 방문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며,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찬란했던 과거를 상상하게 합니다.
기둥 주변에 남아있는 세라페움의 유적들은 과거의 영광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단서를 제공하며, 특히 지하 묘지와 통로들은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 지역은 이집트 관광 산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매년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아와 고대 문명의 흔적을 탐방하고 있습니다.
폼페이 기둥과 그 주변 유적의 보존은 인류의 공동 유산을 지키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오랜 세월 동안 풍화 작용과 환경적인 요인으로 인해 기둥과 유적은 끊임없이 침식되고 손상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이집트 정부와 국제 기구들은 유적의 보존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정기적인 보수 작업과 환경 관리, 그리고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이 소중한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폼페이 기둥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을 넘어, 현재와 미래 세대가 역사를 이해하고 고대 문명의 위대함을 경험할 수 있는 중요한 교육적, 문화적 자원입니다.
따라서 이 거대한 역사의 증인을 보호하고 연구하는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무리

알렉산드리아 폼페이 기둥은 단순한 돌기둥이 아니라, 수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영광, 로마 제국의 통치, 그리고 기독교로의 전환이라는 격동적인 시대를 모두 목격하며 굳건히 서 있는 이 기둥은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가 겪었던 흥망성쇠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폼페이 기둥은 과거의 위대한 공학과 예술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역사적 오해와 진실, 그리고 종교적 변화가 한데 어우러진 복합적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기둥을 통해 고대 세계의 지적, 문화적 유산을 되새기고, 인류가 걸어온 길을 성찰하는 귀한 기회를 얻습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역사적 심장부에 우뚝 선 폼페이 기둥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전 세계인에게 영감을 주며, 고대 문명의 경이로움을 전하는 살아있는 상징으로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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