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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품은 땅, 미얀마 바간: 고대 불교 유적지의 신비와 감동
미얀마 중부에 자리한 고대 도시 바간은 수천 개의 불탑과 사원이 드넓은 평원에 펼쳐져 장관을 이루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입니다.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 사원과 더불어 세계 3대 불교 유적지로 손꼽히는 이곳은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미얀마의 역사와 신앙심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인류의 위대한 종교 건축 유산인 바간 유적지의 깊은 역사와 독특한 문화, 그리고 방문객들이 경험할 수 있는 경이로운 순간들을 상세히 안내합니다.
바간 왕조의 탄생과 번성, 그리고 몰락
바간의 역사는 서기 2세기경 시작되었으나, 미얀마 최초의 통일 왕조인 바간 왕국의 수도로서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은 것은 11세기 초 아노라타 왕(재위 1044년~1077년) 때부터입니다.
아노라타 왕은 미얀마 전역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남부 몬족의 도시 타톤을 정복하여 팔리 문자와 상좌부 불교를 대대적으로 도입했습니다.
그의 아들 찬싯타 왕(재위 1084년~1113년) 시대에는 가장 유명한 아난다 사원과 수백 개의 탑이 건립되는 등 불교 예술과 건축이 절정에 달했습니다.
12세기에서 13세기에는 바간이 세계적인 불교 연구의 중심지로 성장하여 인도, 스리랑카, 태국, 크메르 등지에서 많은 승려와 학생들이 찾아왔습니다.
미얀마 속담에 따르면 한때 4백만 개에 달하는 불탑이 있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5천여 개로 추정됩니다.
이처럼 번성하던 바간 왕조는 1287년 몽골의 쿠빌라이 칸 침략으로 인해 급작스럽게 몰락했으며, 바간 도시는 약탈과 방화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유적지는 버려지거나 관리가 소홀해졌고, 1975년과 2016년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인해 상당수의 탑과 사원이 훼손되었지만, 현재도 약 2,500개에서 3,000개에 달하는 유적들이 평원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천년의 불심이 깃든 건축 미학
바간의 사원과 탑은 주로 11세기에서 13세기 사이에 벽돌로 지어졌으며, 미얀마 불교 건축의 보고로 불립니다.
이곳의 건축물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제디(Zedi)'는 사방이 벽돌로 막혀 있어 내부로 들어갈 수 없는 탑을 의미하며, '파토(Pahto)'는 내부 공간에 불상이 안치되어 있거나 관람이 가능한 사원을 지칭합니다.
각 사원은 독특한 양식과 스토리를 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바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알려진 아난다 사원(Ananda Temple)은 1105년에 찬싯타 왕이 세웠으며, 몬 양식 구조의 실내는 마치 동굴 사원과도 같은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사방에 네 개의 거대한 불상이 모셔져 있으며, 빛이 부처의 얼굴 위로 곧바로 떨어지도록 설계된 정교함이 돋보입니다.
쉐지곤 파고다(Shwezigon Pagoda)는 미얀마를 최초로 통일한 아노라타 왕이 따똥국 정복을 기념하여 1085년에 세운 최초의 기념탑이자 사원으로, 사원 전체가 황금빛으로 화려한 문양이 아름답습니다.
또한 바간에서 가장 높은 사원인 탓빈뉴 사원(Thatbyinnyu Temple)은 12세기에 건축되어 고대 미얀마 건축의 정교함을 보여줍니다.
거대하고 진한 색의 피라미드형 사원인 담마양지 사원(Dhammayangyi Temple)은 건설 도중 왕이 사망하며 미완성으로 남았지만, 그 웅장함과 정교한 벽돌 구조로 유명합니다.
바간에서 가장 오래된 불탑 중 하나인 부파야 파고다(Buphaya Pagoda)는 이라와디 강변 언덕에 위치하여 아름다운 일몰 명소로도 인기가 높습니다.
바간을 구성하는 세 가지 주요 지역
바간 지역은 크게 냥우(Nyaung-U), 올드 바간(Old Bagan), 뉴 바간(New Bagan)의 세 구역으로 나뉩니다.
냥우는 주로 배낭여행자들이 많이 머무는 지역으로, 게스트하우스, 저렴한 식당, 여행사 등 편의시설이 밀집해 있습니다.
냥우 시내의 재래시장인 냥우 마켓에서는 칠기, 공산품, 야채, 과일 등 다양한 품목을 구매할 수 있어 현지인의 활기찬 생활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올드 바간은 중고급 호텔이 많지만 민가가 거의 없어 편의 시설이 부족한 편입니다.
이 지역은 유적지가 가장 밀집해 있는 핵심 구역으로, 많은 유명 사원들이 이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뉴 바간은 바간 유적지를 정비하면서 사원 주변에 살던 현지인들을 이주시킨 새로운 마을입니다.
상대적으로 현대적인 시설들이 들어서고 있지만, 유적지와의 접근성이나 편의성 면에서는 냥우 지역이 여행자들에게 가장 편리하다고 평가받습니다.
각 지역은 바간 여행의 목적과 스타일에 따라 다양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올드 바간에서는 고대 유적의 장엄함을, 냥우에서는 현지 문화의 생동감을, 뉴 바간에서는 조금 더 정돈된 환경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바간 유적지 방문자를 위한 안내
바간을 여행하는 외국인 여행자는 지역 유적 입장료를 내야 하며, 이 요금은 구입일로부터 5일간 유효합니다.
넓은 유적지를 효율적으로 둘러보기 위해서는 다양한 교통수단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마차는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느끼며 유적지를 천천히 탐험하기에 좋으며, 전기 스쿠터(e-bike)나 자전거는 원하는 사원을 자유롭게 방문하고 일출이나 일몰 포인트로 이동하기에 편리합니다.
2016년 대지진 이후 안전상의 이유로 높은 사원에 올라가는 것은 금지되었지만, 여전히 높은 언덕이나 난민 전망대, 또는 특정 파고다 근처에서 환상적인 일출과 일몰 풍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라와디 강 위로 지는 해를 볼 수 있는 부파야 파고다나 로카난다 파고다도 인기 있는 일몰 감상 포인트입니다.
바간 사원 방문 시에는 반드시 어깨와 무릎을 덮는 복장을 착용해야 하며, 사원 내부에서는 신발을 벗고 조용히 행동하며 불상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이 기본적인 불교 사원 예절입니다.
바간은 건조한 지역으로 낮에는 매우 더울 수 있으므로, 자외선 차단제와 충분한 물을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5월 말부터 10월까지는 우기 시즌으로 비가 많이 내릴 수 있으니, 여행 계획 시 날씨를 고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간의 불교 문화와 정신적 가치
바간은 단순한 유적지가 아니라 미얀마 불교 신앙의 살아있는 심장입니다.
아노라타 왕에 의해 상좌부 불교가 도입된 이래, 바간은 미얀마 전역에 불교를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왕실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수많은 사원과 탑, 수도원이 세워졌으며, 이는 버마 문화, 언어, 민족의 기반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바간의 종교는 유동적이고 혼합적이었으며, 상좌부 불교뿐만 아니라 대승불교, 탄트라 불교, 다양한 힌두교 학파, 토착 정령 숭배 전통인 '낫' 신앙 등이 공존했습니다.
미얀마 사원에는 '낫' 사당이 같이 있는 경우가 많아, 불교와 토착 신앙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독특한 종교 문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바간은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의 불자, 관광객, 순례자들을 끌어모으는 성지로, 이곳에 남아있는 수많은 유적들은 바간 왕조의 건축적 독창성과 종교적 헌신을 증명하며 깊은 영적인 울림을 선사합니다.
사원 곳곳에서 마주하는 불상과 벽화는 석가모니의 생애와 불교 교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하여 방문객들에게 종교적 감동과 함께 미얀마 예술의 아름다움을 전합니다.
재해와 보존 노력, 그리고 미래
바간은 지진에 취약한 지역으로, 1975년과 2016년의 대지진은 수많은 유적에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파고다가 훼손되거나 복원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이러한 재해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바간은 그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세계유산 등재는 바간의 보존과 복원 작업에 국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더 체계적인 보호 노력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미얀마 내부의 정치적 상황과 교전으로 인해 일부 바간 인접 마을에서 무력 활동이 발생하고 있어, 유적지의 안전과 세계유산으로서의 지위 유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바간은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서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곳입니다.
미얀마 정부와 국제 사회의 협력을 통해 이 위대한 불교 유적지가 미래 세대에게도 온전히 전달될 수 있도록 보존 노력은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바간은 과거의 영광을 넘어 현재에도 살아 숨 쉬는 역사이며,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그 가치를 지켜나가는 중요한 상징입니다.
마무리
미얀마 바간은 수많은 불탑이 만들어내는 장엄한 풍경과 그 속에 담긴 천년의 역사, 그리고 깊은 불심이 어우러져 방문객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합니다.
황금빛으로 물드는 일출과 붉은 노을이 내려앉는 일몰 속에서 고대 사원들의 실루엣이 자아내는 신비로운 분위기는 바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순간입니다.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도전 속에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바간의 유적들은 미얀마의 정신이자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영원히 빛낼 것입니다.
바간은 단순한 여행지를 넘어, 삶의 의미와 역사적 성찰을 선사하는 특별한 경험의 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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